윤재희(29)
** 현직 대통령의 딸이며 현직 외교관. 본인은 그 사실을 의식하지 않고 살지만 늘 주위 사람들이 일깨워준다. 덕분에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는 짓은 죽어도 못한다. 아주 가끔 경호원을 따돌리고 훌쩍 여행을 떠나거나 담배연기 자욱한 만화방에서 컵라면을 먹으며 무협지를 읽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.
초등학교 6학년 때 ‘로마의 휴일’을 보고 그레고리 팩에게 반했고, 자신이 오드리 햅번보다 못 할 것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. 그러나 하루아침에 공주가 될 수는 없었다. 고민 끝에 나라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여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아버지에게 물었다. 현명하고 다정했던 그녀의 아버지, 누구보다 딸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‘미스코리아’가 아닌 ‘외교관’을 추천했다.
그날부터 그녀는 외교관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스물넷에 외시를 패스했다. 첫 발령지 파리에서 그레고리 팩 만큼이나 멋있는 영우를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연기처럼 사라져버린 영우로 인해 첫사랑의 달콤함은 그대로 독이 되어 그녀의 심장에 박혔다.
본부 근무가 끝나 프라하로 떠났고, 그곳 근무가 끝나 갈 무렵, 야생 동물처럼 거칠고 지친 한 남자를 만났다. 사사건건 못살게 굴던 이 남자, 알고 보니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왔단다. 그녀를 찾기 위해 창피함도 미안함도 없는 그 남자.... 그 남자의 사랑은 적어도 자신처럼 안으로 멍들지는 않겠구나, 생각했다. 그런데... 언제부턴가 이 남자... 자꾸만 눈에 밟힌다. 그 남자의 모든 것이 궁금해진다. 그 남자를 떠난 그 여자가 고맙고 밉다.
마음은 흰 종이와 같아서 한번 생긴 얼룩을 지울 수 없다면 그냥 찢어버려야 한다는 것도 그 남자에게 배웠다. 그 남자에게 배운 대로 영우의 얼룩을 마음속에서 말끔히 찢어 버리기로 결심한 그 순간, 5년의 세월을 비집고 거짓말처럼 영우가 돌아왔다. 하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속엔 상현을 향한 희고 하얀 종이가 깔려있는데....